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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스터디 블로그
황혼이 지나면 오늘 하루도 지리멸렬했다. 어제와 똑같은 일을 지리하게 되풀이했고, 그나마 손에 잡히는 일은 멸렬하게 끝나갔다. 퇴근길을 나는 거의 기어서 돌아온다. 버스에서 내릴 때쯤 난장판이 되어있을 자취방을 떠올린다. 이대로 집에 가면 나도 쓰레기가 된 기분으로 쓰레기들 사이에서 웅크려 있으리라. 오늘 밤 내내. 그래서 나는 집에 가는 대신 카페에 들어가 앉는다.꽃이 그려진 찻잔과 종이갓이 달린 전등, 헝겊 표지 공책. 소소하면서도 따뜻한 소품들이 딴 세상 물건들처럼 놓여 있다. 내가 있어서는 안 될 곳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주저앉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피로가 턱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젖은 이불처럼 늘어져 있다가 정신을 차린 건, 내 앞에 찻잔이 놓였을 때였다.“유자차에요. 오늘 되..
봄이다. 봄을 좋아한 적은 없다. 그 대책 없는 화사함과 희망참이 꼭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서 기분 나빴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계절이 아닌 것 같아. 그런 느낌. 언젠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의 할머니를 앞에 두고 봄을 마음껏 싫어한 적이 있었다. 봄은요. 할머니. 꽃이 너무 많이 피어요. 새싹이 너무 많이 올라와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웃어요. 할머니는 눈을 반쯤 뜨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뇌졸중인가, 뇌일혈인가. 아무튼 심각해보이는 이름이었고, 할머니는 병명 만큼만 심각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병실에 들어서면 죽음의 냄새가 어렴풋이 났다. 편안했다. 대학을 자퇴하고 붕 뜬 시절이었다. 알바가 없는 날이면 놀러가 큰삼촌 대신 병실을 지키곤 했다. 할머니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고, 그래서..